브라이트비저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도벽은 아니다. 스탕달 증후군이 설사 공인된 질환이라고 해도 브라이트비저의 범죄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스탕달 증후군을 명명했던 이탈리아 의사의 환자 중에도 예술품을 훔친 경우는 없다.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광기나 어떤 심각한 정신질환이 브라이트비저를 짓누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지난 6개월간 네 번의 주말 중 세 번은 도둑질을 했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미쳤다고밖에 볼 수 없다. 정작 브라이트비저는 이 정도 속도면 양호하다고 느끼며 앞으로도 이대로 더 훔칠 수 있다고 말한다. 결코 정상이 아니다.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을까.
심리 치료사 슈미트는 범죄를 저지르는 정신 이상자를 치료하거나 낫게 할 방법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다른 심리치료사들 역시 같은 생각이다. 여러 명의 심리학자가 브라이트비저의 심리를 연구해 보고했다. 브라이트비저는 법원 명령을 받아 강제로 이들과 만나야 했다. 슈미트 역시 이 중 한 사람이었고, 심리학자들은 모두 브라이트의 범죄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나를 신기한 연구 대상으로 여겨요. 전부 개자식들이죠.”
2002년 슈미트는 브라이트비저와 만나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MMPI, 스필버거의 상태-특성 불안검사STAI, 레이븐 누진 행렬검사Raven’s Progressive Matrices 등 여러 심리학 검사를 실시했다. 슈미트는 브라이트비저를 자기도취에 빠진 나르시시스트라고 결론 내린다. 그는 스스로 선견지명이 있다고 믿으며 사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받은 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불법이든 아니든 원하는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논리다. 슈미트에 따르면 그는 예의나 배려, 법을 무시하며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양심의 가책도 없다. 브라이트비저는 개인 소장품은 훔친 적이 없는 데다 폭력을 행사한 적도 없다는 이유를 들며 자신의 행동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이 그런 식이라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슈미트가 묻는다. 스트라스부르 출신의 심리학자 앙리 브루너Henri Brunner 역시 2004년에 브라이트비저의 심리 상태를 검사한 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무뚝뚝하고 불만투성이에 바라는 것만 많고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한마디로 미성숙한 인간이다.” 정신과 의사 파버히스 듀발Fabrice Duval은 1999년에 브라이트비저를 만나고 나서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기록했다.
슈미트 역시 브라이트비저를 관찰한 후 어머니가 응석받이로 키운 덕에 “현실에서 마주하는 좌절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말한다. 버릇없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성격적 특징은 웬만해서 고치기 힘들다는 게 슈미트의 소견이다. 브라이트비저 스스로 사회 시스템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자 노력해야 하며, 도둑질을 멈추고 강도 높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중 하나라도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앤 캐서린 역시 법원 명령에 따라 2002년 프랑스 심리학자 세자르 레돈도César Redondo를 만났다. 레돈도는 앤 캐서린의 “지적 능력에는 문제가 없으며”(언뜻 모욕적으로 들리지만 그저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관용어일 뿐이다) 타인이 통제하기 쉬운 “유약한 성격을 가졌다”고 보고했다. 또한 브라이트비저가 앤 캐서린의 심리를 조종해 자신의 도착적 예술품 절도 행위에 가담시켰고 앤 캐서린은 거절할 힘이 없었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레돈도에 따르면 앤 캐서린은 아무런 심리적 결핍이나 결함이 없고 혼자서는 범죄를 저지를 유형이 아니다. 그럼에도 빠른 시일 안에 심리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다.
심리 치료사들은 브라이트비저가 현실에서 아예 동떨어진 인물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옳고 그름을 구분한다. 지적 능력에도 문제가 없다. 우울증 증상과 변덕 역시 의학적으로 장애라고 할 만한 수준에는 미치지 않는다. 가끔이긴 하지만 웨이터로 일하기도 했던 걸 보면 진짜로 사회불안장애를 겪지는 않았다. 브루너 역시 브라이트비저가 판단력이 흐려질 정도로 심리적 또는 신경학적 이상 소견을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스스로 행동을 통제할 능력이 충분한 데다 절도 자체가 어떤 질환의 증상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런 근거로 심리학자들은 브라이트비저가 범죄와 관련해 사이코패스의 성향을 갖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다.
슈미트의 주장에 따르면 브라이트비저에게서 자기애성 인격장애와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징후를 볼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흉악범에게 흔히 보이는 특징이지만, 그가 저지른 범죄의 원인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브루너는 브라이트비저가 어떤 심리적 이유로 유혹을 참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추측한다. 사실 박물관에서는 누구나 브라이트비저와 같은 생각을 한다. ‘아, 이 그림을 내 방에 걸고 싶다.’ 차이가 있다면 브라이트비저는 이 비합리적인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잠깐 스치는 바람 같은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서는 거대한 암벽처럼 버티고 있다.
아버지에게 앙갚음하려 했다는 변명은 더는 말이 되지 않는다. 이미 아버지가 소유했던 양을 훌쩍 뛰어넘었다. 다락에 있는 작품만으로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실 하나는 충분히 채울 정도다. 앤 캐서린은 긴장감과 흥분을 즐겼던 듯한데, 늘 그렇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런 순간이 존재하긴 했을 것이다. 남자친구를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도 작용했다고 본다. 정작 자신은 다락에 미술품이 부족하다거나 새로운 작품으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음에도 자발적으로 브라이트비저를 도와 세계 신기록 수준으로 작품을 훔쳤던 걸 보면 말이다. 브라이트비저는 언제나처럼, 아니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도둑질을 벌이고 있으며 여전히 그 이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브라이트비저는 자신의 도둑질에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술사 연구를 위해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을 때면 자신이 벌인 사건들을 되짚어본다. 〈산마르코의 말The Horses of Saint Mark〉은 결코 훔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훔쳐야 했다. 구리로 만든 실물 크기의 네 마리 말이다.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유명한 조각가 리시푸스Lysippus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지만 초반의 역사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이 네 마리 말은 약 400년 후 네로 황제의 군대가 약탈해 로마로 옮겨갔다.
그리고 300년이 지나 콘스탄티누스 1세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히포드롬 전차 경기장으로 옮겨 전시했다. 네 마리의 말은 이후 900년 동안 한 자세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1202년 무자비하기 이를 데 없던 제4차 십자군 전쟁에서 다시 약탈당해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 앞으로 옮겨졌다. 그 후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을 600년간 굳건히 지켰다. 1797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에서 다시 강탈해 사방이 뚫린 마차에 싣고 파리 시내를 행진한 뒤 루브르 박물관 앞 개선문 위에 고정했다. 이후 워털루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군이 조각상을 압수해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놓기로 결정한다. 그리스가 될 수도 있고 튀르키예나 로마가 될 수도 있었지만 〈산마르코의 말〉은 결국 베네치아로 돌아갔다.
이처럼 예술의 역사는 절도의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고 브라이트비저는 이야기한다. 인류가 기록을 시작한 초창기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도굴꾼을 조심하라는 문구가 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 역시 예루살렘에서 언약궤Ark of the Covenant를 빼왔고 페르시아는 바빌로니아를, 그리스는 페르시아를, 또 로마는 그리스를 약탈했다. 반달족은 로마의 부를 탐했다. 16세기 초 에스파냐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에르난 코르테스는 각각 잉카와 아스테카를 파괴하고 강탈하지 않았는가.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은 1648년 프라하에서 그림 1,000점을 빼앗아 전쟁에서공을 세운 장군들에게 하사했다.
나폴레옹은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하기 위해 훔쳤고 스탈린은 에르미타주 미술관The State Hermitage Museum을 채우기 위해 훔쳤다. 히틀러는 야심만만한 수채화가였으나 비엔나 미술아카데미Academy of Fine Arts에서 두 번이나 입학을 거절당했고 나중에는 고향인 오스트리아 린츠에 직접 박물관을 지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을 모두 모아놓고자 했다. 1759년 계몽 시대에 개관한 세계 최초의 국립 미술관인 영국 박물관British Museum은 어떠한가. 영국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품목인 베닌 브론즈Benin Bronzes와 로제타석Rosetta stone은 각각 나이지리아와 이집트에서 약탈했고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왔다.
브라이트비저는 미술상과 경매 회사들이 최악이라고 주장하며 그들 모두 먼지보다 못한 존재라고 비난한다. 기원후 1세기 로마 시대 역사학자였던 플리니우스가 로마 제국 미술품 판매상들의 부정직한 상술에 대해 묘사한 바 있고 크리스티Christie’s와 소더비는 가격 담합으로 구매자와 판매자를 속여 2000년 9월에 5억 1,200만 달러(약 6,800억 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지난 2,000년간 음침한 사람들이 훌륭한 작품을 내다 팔아왔다.
브라이트비저가 훔친 작품은 그에게는 그저 물건이 아니라 또 다른 도둑질의 이유가 된다. 그리고 어차피 예술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도둑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원하는 것을 내가 갖지 않으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 미술상에게 돈을 내고 작품을 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브라이트비저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사용한다. 적어도 그는 예술계의 끝이 보이지 않는 악의 소굴에서도 만만치 않은 악당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아마도 이게 브라이트비저의 꿈이겠지만, 예술의 역사에 영웅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