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브라이트비저는 사실 예술품 도둑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스스로는 그렇게 믿는다.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했던 예술품 도둑 중 가장 많은 작품을 훔쳤고, 가장 성공한 도둑임에도 그렇다. 그는 은신처에서 발견된 작품들을 자신이 훔쳤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을 앤 캐서린 클레인클라우스가 옆에서 도왔다. 브라이트비저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정확히 안다. 각 작품을 박물관에서 빼내는 데 몇 걸음이 들었는지 묘사할 수 있을 정도다.
그는 미술품 도둑을 싫어한다. 아무리 뛰어난 도둑이라도 브라이트비저의 경멸을 피할 수는 없다. 한 예로, 1990년 미국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에 도둑 두 명이 침입했다. 이들은 성 패트릭의 날 밤에 경찰 복장을 하고 박물관에 들어갔다. 야간 경비원 두 명이 불러 세웠지만 재빠르게 무력으로 제압해 눈과 입을 테이프로 막고는 수갑을 채워 지하 수도관에 묶었다.
야밤에 저지른 폭력적인 강도 짓을 브라이트비저와 비교하는 것은 모욕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예술품 절도는 누구에게도 두려움을 주지 않아야 하며 낮에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가 가드너 박물관 사건을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폭력을 행사한 이후도 문제였다. 도둑들은 위층으로 올라가 이 박물관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인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의 1633년작 〈갈릴리 호수의 폭풍The Storm on the Sea of Galilee〉을 마주 보고 섰다. 그러고는 캔버스에 칼을 꽂아 넣었다.
브라이트비저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칼날로 20미터에 이르는 작품의 가장자리를 찢어 물감 조각이 튀어나오고 캔버스의 실밥이 터졌다. 그림이 틀과 액자에서 흐물흐물 떨어져 나와 활기를 잃고 종이가 말려 물감이 갈라지고 깨졌다. 도둑들은 또 다른 렘브란트의 작품에도 똑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브라이트비저는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범죄자란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고의로 그림을 가르고 부수다니, 비도덕적이다. 물론 그도 액자가 있으면 그림을 훔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벽에서 작품을 떼어낸 다음 뒤집어서 뒷면에 달린 클립이나 못을 조심스럽게 빼내 액자를 분리한 뒤 그림만 가지고 나온다. 이렇게까지 주의를 기울일 시간이 없을 때는 차라리 포기하고 훔치지 않는다. 그게 아니라면 그림에 상처라도 날까, 또는 휘거나 주름이 생기거나 더러워지지는 않을까, 막 태어난 갓난아기를 대하는 양 애지중지한다.
가드너 박물관 도둑들은 브라이트비저의 기준에서는 야만인이나 마찬가지다. 이유도 없이 렘브란트의 그림을 훼손했다. 그것도 글쎄 렘브란트의 그림을. 인간의 마음과 빛을 그려낸 대가가 아닌가.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열세 점의 그림과 함께 사라졌다. 가치로 치면 5억 달러(약 7,00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 그림들을 되찾는다고 해도 온전히 돌이킬 수는 없다. 대부분의 예술품 도둑이 그렇듯, 가드너 박물관 강도들도 예술 자체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세상을 더 혼탁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브라이트비저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술품을 훔쳤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지금까지 미학을 논한 예술품 도둑은 없었다. 여러 언론사와 장시간 인터뷰를 할 때도 그는 이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죄를 감추려는 마음 따위 없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당시의 감정을 현재 시제를 사용해 즉각적으로, 그리고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자세히 묘사한다. 정확성을 위해 필요 이상의 말을 할 때도 있다. 〈아담과 이브〉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을 설명할 때는 야구 모자와 가짜 안경을 쓰는 등 변장을 하고 현장으로 돌아가 나사를 뺀 방식과 작품을 감상하는 척할 때 취했던 자세 등을 재연하기도 했다. 다른 절도 사건도 비슷하게 재연했다. 그가 한 말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경찰 보고서가 수백 건이다.
브라이트비저는 마음이 동하는 작품만 훔치고 그 박물관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작품은 남겨둔다. 도둑질할 때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않는다. 그가 가진 뒤틀린 관점에서 보기에 박물관은 예술의 감옥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북적이고 시끄러우며 관람 시간도 정해져 있고 자리도 불편하다. 조용히 생각하거나 쉴 만한 장소도 없다. 셀카봉으로 무장한 관광객 무리는 쇠사슬에 묶인 죄수들처럼 이 방 저 방을 우르르 몰려다닌다.
그는 아무리 강렬히 마음을 울리는 작품 앞에 서 있어도 박물관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런 작품과 마주하면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 소파나 안락의자에 몸을 기댈 수 있어야 한다. 원한다면 술도 한 모금 마셔도 좋다. 간식도 필요하다. 그리고 언제나 손을 뻗으면 작품에 닿을 수 있고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 그제야 예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아담과 이브〉를 예로 들어보자. 이 작품에는 여러 상징이 내재하며 모든 부분의 비율이 일정하고 균형 잡힌 자세가 돋보인다. 박물관 안내 책자에 적혀 있을 법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오히려 작품을 있는 그대로 감상할 수 없게 가로막는다.
자, 이제 조각상을 훔쳐서 브라이트비저의 조언대로 다시 찬찬히 살펴보자. 아담의 왼팔은 이브의 어깨에 걸쳐 있고 다른 한 손은 몸에 닿아 있다. 신이 막 빚은 태초의 연인은 어디 한 군데 흠잡을 데가 없다. 근육질에 날씬하고 건강하며 아름다운 머리카락과 도톰한 입술을 하고 있다. 이브는 수줍은 듯 목을 살짝 기울인다. 둘 다 나체다. 아담은 성기를 드러내고 있으며 할례를 받은 듯하다. 민망해하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봐도 괜찮다. 이브는 오른손을 아담의 등에 얹는다. 아담에게 더 가까이 오라고 하는 듯하다. 왼손은 자신의 두 다리 사이에 올리고 손가락을 안쪽으로 구부리고 있다.
브라이트비저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 작품은 성적으로 자극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침대가 가까이에 있으면 좋다. 기둥이 네 개 달린 침대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파트너도 옆에 있다면 타이밍이 절묘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빼면 그는 방에 있는 작품 하나하나를 금지옥엽 보살핀다. 온도와 습도가 괜찮은지, 빛은 적절한지, 먼지가 많지는 않은지 세세히 살핀다. 그는 자신의 방이 박물관보다 작품에 더 좋은 환경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를 야만적인 다른 도둑들과 하나로 묶는 것은 잔인하고도 불공평한 처사다. 브라이트비저는 예술 도둑이 아닌 조금 색다른 방식의 예술 수집가로 여겨지기를 원한다. 그도 아니라면 예술 해방가라 불려도 좋다.
앤 캐서린의 감정은 조금 더 알기 어렵다. 기자들과 이야기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호사나 개인적 친분이 있는 지인, 사건 수사관 등 그녀를 직접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과는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경찰 취조 과정에서 수집한 질의응답 내용과 증언, 그리고 두 사람의 심리 보고서 일부는 공개된 정보로 열람이 가능하다. 두 사람이 집에서 촬영한 영상과 개인적인 편지도 입수했다. 박물관 보안 카메라 자료와 언론 기사, 경찰과 검사, 예술계 인사들의 진술서도 있다.
이들의 절도 사건을 정확히 파헤치기 위해 관련된 모든 자료를 철저히 분석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와 범죄 사실에 관한 가장 내밀한 정보는 모두 브라이트비저의 진술에 의존한다. 앤 캐서린이 자신의 경험을 직접 이야기한다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겠지만 질문에 답변한들 범죄 사실을 인정해 형량을 더할 뿐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택지가 이 정도인 상황에서 그녀의 침묵은 현명한 결정으로 보인다.
앤 캐서린이 공식적으로 발언한 적은 없지만 그녀는 브라이트비저와 달리 스스로를 예술 해방가로 여기지 않는다. 이 점은 분명하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도덕적으로 왜곡된 다른 어떤 정당화도 시도하지 않는다. 브라이트비저보다 실리와 이성을 중시한다. 앤 캐서린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라면 브라이트비저는 구름 속에 산다고 볼 수 있다. 브라이트비저가 그녀를 환상의 세계로 초대하면 앤 캐서린이 그를 다시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다준다. 그녀가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앤 캐서린은 훔친 작품들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아름다운 예술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더럽혀진 절도품이다. 브라이트비저는 이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에게 세상에 통용되는 유일한 화폐는 아름다움뿐이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자신 역시 생존하는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여긴다.
앤 캐서린은 스스로를 부유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두 사람은 파산 상태이며 앞으로도 회복이 불가능하다. 브라이트비저는 금전적 이득을 원하지 않는다. 내다 팔기 위해 훔친 작품은 단 하나도 없다. 이 역시 여느 예술품 도둑과의 차이점이다. 돈이 얼마나 없는지, 도주할 때조차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는 길로 돌아갈 정도다. 어쩌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있다. 물류 창고와 화물차에서 짐을 나르거나 피자 가게와 카페에서 점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선술집에서 일한 적도 있다. 주로 정부 보조금과 가족의 도움으로 생활한다. 앤 캐서린은 병원에서 간호 조무사로 근무하지만 월급은 넉넉치 않다.
두 사람이 이토록 이상한 장소에 비밀 갤러리를 꾸민 까닭 역시 여기에 있다. 브라이트비저는 월세를 낼 형편이 안 돼 어머니 집에 공짜로 얹혀산다. 어머니는 아래층 방에 살고 있으며 아들의 요청대로 사생활을 존중해 위층으로는 올라오지 않는다. 훔친 작품을 집으로 가져올 때는 단조로운 다락을 꾸미려고 벼룩시장에서 샀다고 하거나 복제품이라고 둘러댄다.
브라이트비저는 백수인 채로 어머니 집에 머문다. 그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 덕분에 생활비가 얼마 안 들어 방 안 가득 놓인 작품을 현금으로 바꿀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다. 돈 때문에 예술품을 훔치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보다 위험 부담이 적은 일로도 돈은 벌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대상에게 자유를 주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황홀의 경지에 오르는 일이다. |